544년 느티나무 아래 한마음

544년 느티나무 아래 열린 마을 축제
청학동을 오랫동안 지켜온 느티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18회 느티나무와 함께하는 마을 이야기 축제가 2026년 10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열렸다.
마을 입구에서는 흥겨운 농악놀이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장단이 울려 퍼지자 행사장을 찾은 주민들이 공연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축제 분위기에 어우러졌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 행사라는 점이 현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축제의 중심에는 수령 544년의 느티나무가 자리했다. 둘레가 6.3미터에 이르는 이 나무는 성인 여러 명이 팔을 둘러야 감쌀 수 있을 만큼 크다. 청학동 주민들은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킨 느티나무를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여겨왔다.
주민의 마음으로 이어온 공동체 행사
청학동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은 윤종만 고문이 진행해 온 행사를 이어받아 축제를 준비했다. 이은택 대표가 행사를 맡은 뒤로는 이번이 네 번째다. 올해도 온 동네의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람이 모여 마을이 되고 마음이 모여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 축제 전반에 담겼다. 주민들은 공연과 전통놀이, 식사를 함께하며 이웃의 얼굴을 마주하고 정을 나눴다.
행사를 위해 모인 후원금은 느티나무 축제 운영을 비롯해 마을 청소년 장학금과 공동체 활동 기금에 사용된다. 축제 하루의 즐거움을 넘어 청소년과 마을 활동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꾸민 무대
청학동 다함께돌봄센터 어린이들은 탬버린 댄스를 선보였다. 어린이들이 탬버린을 들고 춤을 추자 관람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어린이들의 활기찬 움직임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졌다.
이어 여섯 명으로 구성된 그리니 라인댄스 팀이 무대에 올랐다. 50대와 60대 참가자들은 날개 모양의 의상을 입고 동작을 맞추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연 전 장소가 좁아 보였다는 박 회장은 실제 무대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호응해 기뻤다고 전했다.
이향희 고은소리 국악예술단은 고운 한복을 입고 민요를 들려줬다. 청학노인복지관을 통해 행사 소식을 접한 83세 관람객은 공연이 편안하고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옥련동에서 두 딸과 함께 찾은 39세 주민은 큰딸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게 돼 처음 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오래 이어진 축제처럼 느껴졌으며 마을의 화합과 양보, 배려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느티나무에서 시작된 청학동의 기억
청학동에서 결혼생활 40년을 보낸 66세 주민은 느티나무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고 도시화가 진행된 과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느티나무에 제사를 지내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주민 참여가 늘면서 마을 축제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축제 과정에서는 다문화가족이나 소외계층의 결혼을 전통 방식으로 치러준 적도 있다고 전해졌다. 행사장 한편에는 그동안 주민들이 함께한 축제 사진이 전시됐다. 사진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청학동 공동체의 시간을 보여줬다.
옥련동에서 온 81세 주민은 올해까지 3년째 축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 혼례 재현을 꼽았다. 전년도 즉석 노래자랑에서는 수상해 도라지 진액을 상품으로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콩주머니로 연 박 터뜨리기
점심시간을 앞두고 주민들이 함께하는 박 터뜨리기가 진행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콩주머니를 여러 개씩 나눠줬다. 학교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놀이가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매달린 박을 향해 콩주머니를 던졌다.
박이 터지면서 안에 담긴 간식이 쏟아졌고,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펼쳐졌다. 세대가 달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통 놀이가 축제의 흥을 더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리에 앉은 관람객에게 물과 점심을 전달했다. 김밥과 절편, 쿠키가 무료로 제공됐다. 주민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이어갔고, 행사장은 공연을 보는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는 마을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43주년 부부의 전통 혼례
점심 식사가 끝난 뒤에는 청학노인복지회관 관장으로 퇴직한 서동일 씨와 남궁인숙 씨 부부의 전통 혼례 재현이 이어졌다. 결혼 43주년을 맞은 홍옥혼식이었다.
집례는 김태순 씨가 맡았다. 화촉을 밝히는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 역할은 이은택 마을과 이웃 대표와 윤종만 고문이 맡았다. 가마꾼들이 신랑과 신부를 태우고 행사장에 들어서자 관람객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기 위해 무대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전통 절차에 따라 신부는 두 번, 신랑은 한 번 맞절했다. 혼례 도중 신랑의 사모가 여러 차례 벗겨지자 관람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집례관이 혼례가 처음인 신랑이라며 재치 있게 상황을 풀어내면서 현장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혼례를 마친 부부는 관람객의 요청에 잠시 쑥스러워하다 입맞춤을 했고, 가족과 행사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어 장성한 자녀들의 등에 업혀 퇴장했다. 이때 풍요와 다산, 복을 기원하는 뜻의 쌀과 액운을 막는 의미의 팥이 뿌려졌다. 관람객들은 결혼 43주년을 맞은 부부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전통놀이로 이어진 축제의 끝
전통 혼례가 끝난 뒤에는 제기차기 대회와 투호 놀이, 한 발로 서기 등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에게는 선물이 전달됐고 행운권 추첨도 이어졌다. 주민들은 직접 놀이에 참여하거나 주변에서 응원하며 마지막 순서까지 함께했다.
오전부터 이어진 무대 공연과 식사, 전통 혼례, 민속놀이는 오후가 되면서 차례로 마무리됐다. 544년 느티나무는 한 세대를 넘어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청학동 마을 축제의 중심을 지켰다.
주민에게 열린 마을 쉼터
행사장에서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기독교대한감리회 인천반석교회가 나온다. 이곳은 교회가 사용하는 공간 일부를 지역 주민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 개방하고 있다.
쉼터에는 탁자와 화분이 놓여 있고 간단한 커피와 차, 물이 준비돼 있다. 종교적 목적과 관계없이 지역 주민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인천반석교회 측은 주변 카페와의 상생을 고려해 음료 종류를 간단하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등산객은 잠시 들러 물을 마실 수 있고, 밖에서 놀던 어린이도 쉬어갈 수 있다. 주민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책과 신문을 읽을 수 있다.
오랜 느티나무에서 시작된 축제와 주민에게 열린 쉼터는 청학동의 공동체 모습을 보여준다. 세대가 함께 공연을 만들고 음식을 나누며 전통을 잇는 과정 속에서 마을의 이야기는 계속 쌓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