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에 갇힌 27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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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 갇힌 2700명

하와이에 남겨진 또 하나의 한국 이민사

쾌적한 기후와 해변, 화산 지형으로 알려진 하와이에는 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이민의 역사도 남아 있다. 1902년 12월 인천을 떠난 노동 이민자들이 1903년 1월 하와이에 도착했고, 1905년까지 약 7,200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그 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 강제노동에 동원됐다가 포로가 된 한인들이 있었다. 2026년은 하와이에 수용됐던 한인 포로 약 2,700명이 인천으로 귀환한 지 8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이들의 포로 생활과 귀환 과정을 살펴보는 특별전 낙원에 갇힌 날들 하와이 포로수용소 한인 포로의 기록을 마련했다. 아름다운 휴양지라는 하와이의 익숙한 이미지 뒤편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한인 포로들의 시간을 사진과 문서, 생활자료를 통해 보여주는 전시다.

특별전 관람 정보

전시명낙원에 갇힌 날들 하와이 포로수용소 한인 포로의 기록
전시 기간2026년 9월 22일부터 2027년 2월 21일까지
전시 장소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
관람 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매주 월요일
관람료무료
소재지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월미로 329 한국이민사박물관

전시실에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문서, 그림, 설명 자료가 이어진다. 문서 일부는 한글이지만 하와이에서 생산된 기록이 많은 만큼 상당수 자료가 영문으로 작성돼 있다. 관람객이 자료의 의미와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설명도 배치됐다.

황해수의 기록으로 시작된 전시

전시는 충북 충주 출신 황해수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황해수가 남양군도로 끌려간 뒤 포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미군 정보기관의 심문, 포로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진 한일 민족 갈등, 수용자들의 일상을 차례로 조명한다.

황해수에 관한 주요 자료로는 위체섬에서 붙잡힌 뒤 작성된 태평양 지역 합동정보센터의 포로 심문 보고서가 제시된다. 1945년 12월 21일 하와이를 떠나기 전에 나눠 가진 자유한인보 제7호에 실린 포로 명단도 전시의 출발점이 됐다.

현존하는 사진과 보고서, 명부를 따라가면 한인들이 미군 포로가 된 경위와 하와이 포로수용소로 이송된 과정, 수용소 안에서 이어간 생활을 시간 순서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의 기록은 약 2,700명에 이르는 한인 포로들이 겪은 집단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네 부분으로 살펴보는 포로의 시간

전시는 모두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1. 프롤로그 하와이로 간 한인 포로들
  2. 1부 친밀한 적성 외국인
  3. 2부 낯선 공간 멈춘 시간
  4. 에필로그 해방과 귀환

프롤로그에서는 한인 포로들이 하와이에 이르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1부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확대하던 시기에 군사시설 건설과 물자 보급을 위해 한인들을 동원하고 강제노동에 투입한 과정을 다룬다.

일본군이 패퇴한 뒤 현장에 남겨진 한인들은 미군 포로가 됐고, 하와이 호놀룰루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됐다. 식민지 조선인으로 강제 동원됐던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포로로 분류된 복잡한 현실이 기록 속에 드러난다.

강제노동과 심문에 남은 증언

황해수의 심문 기록에는 1942년 2월 15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사이판과 트럭, 콰잘린을 거쳐 같은 해 3월 5일 위체섬에 도착한 이동 과정이 담겼다. 그는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위체섬에 머물렀다고 진술했다.

한인들은 위체섬에서 산호를 채집하고 분쇄해 비행기 활주로를 조성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전시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원문 기록과 해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의 전선에서 한인 노무자들이 맡아야 했던 고된 노동과 불안정한 처지가 구체적인 이동 경로와 작업 내용으로 제시된다.

태평양 지역 합동정보센터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본부를 뒀던 미국 태평양 지역 사령부의 정보기관이었다. 이 기관이 작성한 포로 심문 보고서는 한인들이 남양군도에 도착한 과정과 노동 환경, 포로가 된 뒤의 상황을 전하는 핵심 자료로 소개된다.

사진과 유물이 전하는 전쟁의 현장

전시장에는 밀리환초를 떠나는 한인 노무자들과 타라와섬의 부상당한 한인 노무자, 펠리우섬의 미군 군목 윌리엄 리턴 중위, 펠리우섬의 한인 노무자 김윤성 등을 담은 사진이 소개된다. 사진 속 인물과 장소는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준다.

심문과 수용생활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당시 사용된 물품도 전시된다. 투항자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생명 보증장, 포로수용소 포로 명부, 수용소에서 착용했던 배지, 대동아전쟁 기념 잔 등이 대표적이다.

각 자료는 포로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제했던 제도와 수용소 내부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문서와 사진, 생활용품을 함께 배치한 전시 공간에서는 한인 포로들의 시간이 기록 속 사건에 머물지 않고 실제 생활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낯선 공간에서 멈춘 일상

2부 낯선 공간 멈춘 시간은 한인들이 포로수용소의 컴파운드에서 지낸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 황해수가 1944년 하와이 호노올리올리 포로수용소에 도착했을 당시 그곳에는 약 200명의 조선인 군속과 노무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소개된다.

미군은 일본군 포로를 계속 미국 본토로 이송했지만 조선인들은 곧바로 이송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해 가을 조선인 포로는 약 1,000명으로 늘었다. 전시는 이들이 일본군과 구별되는 존재였음에도 포로수용소에 남아야 했던 상황을 관련 기록으로 전달한다.

수용소 생활을 보여주는 재현 공간도 마련됐다. 9명이 함께 사용한 군용 캔버스 천막과 작은 침대,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데 사용한 조리도구가 당시의 제한된 생활환경을 보여준다. 통조림과 토스트, 달걀 프라이처럼 당시 한인들에게 낯설었을 식사도 소개된다.

한인 포로들의 생활에는 앞서 하와이에 정착한 이민 1세대의 도움도 있었다. 포로를 위한 성탄 예물을 다룬 공간은 초기 한인 이민사회와 포로들이 만난 장면을 보여준다. 해당 전시 코너에는 관람객을 위한 초콜릿도 마련됐다.

해방 이후에도 늦어진 귀환

전시의 마지막 기록은 1946년 1월로 이어진다. 귀국을 앞두고 발간된 자유한인보 제7호에는 당시 포로들의 이름이 실렸다. 개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명단은 숫자로만 전해지기 쉬운 한인 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드러낸다.

하와이를 떠난 한인 포로들은 겨울의 인천에 도착했다. 이들은 인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린 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강제동원과 포로 생활, 해방과 귀환으로 이어진 긴 여정은 그렇게 끝났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이민사박물관 특별전은 노동 이민과는 다른 형태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인들의 비자발적 이주를 기록한다. 강제노동 현장에서 포로수용소로, 다시 인천을 거쳐 고향으로 이어진 이동을 따라가며 태평양전쟁 속 한인 포로의 삶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

인천에서 만나는 기억의 기록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인천 제물포구 월미도에 자리한다. 이번 특별전은 인천에서 출발한 초기 하와이 노동 이민의 역사와 전쟁 이후 인천으로 귀환한 한인 포로들의 역사를 한 공간에서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분명하다.

전시장은 기록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사진과 유물, 재현 공간이 시대의 흐름을 보완한다. 관람객은 황해수라는 한 인물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면서 강제동원된 한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포로수용소의 생활, 해방 뒤 귀환까지 단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번 전시는 2027년 2월 21일까지 계속된다. 관람을 계획할 때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의 월요일 휴관과 오후 6시 종료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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