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가 건넨 삶의 힘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아트센터 인천 다목적홀에서 ACI 인문학 시리즈 ‘나태주의 시가 사람을 살립니다’ 강연이 열렸다. 나태주 시인의 작품을 아껴 온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면서 행사는 매진에 가까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풀꽃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1945년생으로, 충남 공주에서 인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해 무대에 올랐다. 큰 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그는 강연이 끝날 때까지 무대를 지키며 자신의 시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또렷하게 전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시인의 말에는 경험에서 비롯된 무게와 신뢰가 담겼고, 관객들은 차분하게 귀를 기울였다.
교사와 시인으로 살아온 시간
나태주 시인은 과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시가 아닌 일반 시를 썼을 때 마주해야 했던 주변의 시선과 질투를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겪은 시련과 그 시간을 견디며 깨달은 삶의 지혜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삶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로만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을 선택해도 괜찮으며, 끝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반드시 진짜 끝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객석에 전해졌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조언도 이어졌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쉽게 화를 내지 말고, 상대방을 함부로 낮춰 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멀리 있는 대상을 좇기 전에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존재를 먼저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결점만 찾아내려 하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나이 듦과 질병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주요 화두였다. 시인은 늙고 아픈 현실을 서럽게만 여기지 말고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슬픔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결핍을 견디는 마음
나태주 시인은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삶만을 바라지 말라고 조언했다.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결핍을 견디는 마음을 배우는 과정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는 짧고 쉬운 언어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 세계와 맞닿아 있었다.
대표작 ‘풀꽃 1’도 낭독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익숙한 구절은 대상을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사랑스러움과 고유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객석에 다가갔다. 시인은 작품을 또박또박 외워 낭독하고, 시가 만들어진 배경과 당시의 상황을 경험담과 함께 설명했다.
작품을 예상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독자의 해석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시의 뜻은 읽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답하며, 작품을 한 가지 의미에만 가두지 않는 여유를 드러냈다. 관객들은 시인의 설명과 낭독을 번갈아 들으며 작품이 탄생한 맥락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했다.
신혼부부에게 전한 사랑의 의미
강연에서는 신혼부부를 위한 축시도 소개됐다. 나태주 시인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사랑에 답함’을 낮은 목소리로 낭독했다.
이 작품은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부분까지 아름답게 바라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좋게 생각해 주며, 싫은 순간까지 참고 품어 주는 태도를 사랑으로 설명한다. 특히 처음의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까지 그 태도를 이어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미가 강조됐다.
사랑은 좋은 순간만 선택하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부족한 부분까지 오래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지속적인 태도라는 메시지가 강연장을 채웠다.
손으로 옮겨 쓰는 필사의 힘
최근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로 자리 잡은 필사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태주 시인은 시를 손으로 직접 옮겨 쓸 때 작품에 담긴 마음이 가슴에 더 깊게 새겨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시를 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다는 소회도 밝혔다.
필사는 글자를 단순히 베끼는 행위가 아니라 한 문장을 천천히 읽고, 손의 움직임을 통해 다시 생각하는 과정으로 강연에서 조명됐다. 현장에는 필사 노트를 가지고 온 관객도 있었으며, 시인의 설명이 이어지자 객석은 조용한 집중과 공감의 분위기에 잠겼다.
질문마다 성의를 담은 답변
강연 후반에는 관객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사전에 받은 질문이 포스트잇에 빼곡하게 적힌 가운데 나태주 시인은 질문들을 하나씩 읽고 답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련한 답변과 유머가 더해지면서 진지했던 객석에서는 웃음도 흘러나왔다.
질문을 빠뜨리지 않고 살피는 모습에서는 관객과 끝까지 소통하려는 성의가 드러났다. 관객들은 시인의 마지막 낭독이 끝나자 감동과 아쉬움을 담아 박수를 보냈고, 그렇게 10월의 인문학 강연은 마무리됐다.
12월 인문학 시리즈 일정
아트센터 인천이 마련한 ACI 인문학 시리즈는 시민이 문학과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접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번 나태주 시인 강연에 이어 2026년 마지막 강연은 12월에 열릴 예정이다.
| 행사 | ACI 인문학 시리즈 |
|---|---|
| 강연자 | 정재승 교수 |
| 일시 | 2026년 12월 1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
| 장소 | 아트센터 인천 |
이번 강연은 시가 어렵고 멀리 있는 문장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고, 부족함을 견디며, 나이 듦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은 세대를 넘어 이해할 수 있는 생활의 조언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