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2026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부평구청 강당에서 성인지 감수성의 의미와 일상 속 실천 방법을 살펴보는 기념 강연이 열렸다. 이번 강연은 전 인천양성평등센터장인 정현지 강사가 맡았다. 참석자들은 성별에 관한 익숙한 생각을 돌아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과 지역사회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차분히 살펴봤다.
양성평등주간에 담긴 역사
강연은 매년 9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운영되는 양성평등주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9월 1일은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 선언문인 ‘여권통문’이 발표된 날이다.
당시 북촌 여성들은 여성에게도 교육받을 권리와 정치에 참여할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사립학교인 ‘순성여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강연에서는 관련 역사가 짧은 영상과 함께 소개돼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양성평등주간은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오랜 시간 이어진 권리 향상의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의 평등을 다시 생각하는 기간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여성친화도시 부평구의 성과
부평구가 추진해 온 여성친화도시 조성 정책도 소개됐다. 인천 부평구는 2025년 여성친화도시 조성 성과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성평등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주민이 안심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조성한 점이 주요 성과로 다뤄졌다. 여성 일자리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온 노력 역시 수상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이 같은 성과는 성평등이 선언에 머무는 가치가 아니라 안전과 일자리, 생활환경을 비롯한 구체적인 행정 영역에서 구현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고정관념을 살핀 자가 점검
강연에서는 참석자들이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을 직접 돌아보는 자가 점검도 진행됐다.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세다’처럼 일상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통해 무의식 속 성별 고정관념을 짚었다.
성별 고정관념은 특정한 역할이나 성격, 능력을 여성과 남성에게 미리 정해 놓는 생각이다. 강연은 이러한 생각이 개인의 선택과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참석자들은 질문과 사례를 따라가며 평소의 판단 기준을 점검했다. 강당에서는 무거운 주제를 차분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설명이 이어졌고, 참석자들이 자신의 인식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성인지 감수성의 핵심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평등과 차별을 알아차리고, 타인을 존중하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태도다. 강연에서는 단순히 관련 용어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차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바꾸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통계 자료를 토대로 가족 안에서의 성 역할 인식과 가사·돌봄 분담에 관한 생각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는 내용도 제시됐다.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성별에 따라 나누던 기존 인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가사와 돌봄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사회적 생각이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정 안에서 시작된 평등의 가치가 사회 전반의 관계와 문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서로의 역할을 고정하지 않고 각자의 상황과 능력을 존중하는 것이 성평등한 일상의 출발점으로 제시됐다.
통계로 확인한 성평등 과제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와 국내 국가·지역 성평등 지수를 비교하는 내용도 다뤄졌다.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평등의 어느 영역에서 성과를 냈고, 어느 부분에서 더 노력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 건강 영역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경제적 참여와 의사결정 분야에는 여전히 개선할 점이 있다는 수치가 소개됐다. 이는 교육이나 건강에서의 성과가 경제활동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평등으로 모두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됐다.
인천 지역 통계 가운데서는 야간 보행에 대한 체감 안전도 자료가 제시됐다. 같은 공간을 이용하더라도 성별에 따라 느끼는 안전의 정도와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설명됐다.
정책은 평균적인 수치만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생활 경험을 세밀하게 살펴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주민이 체감하는 불편과 불안을 확인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이 성평등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기준으로 다뤄졌다.
콘텐츠를 살피는 다섯 기준
강연 후반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홍보물과 드라마, 광고, 지방자치단체 포스터 등을 성평등 관점에서 점검하는 다섯 가지 기준이 소개됐다. 구체적인 사례 사진을 활용해 이미지와 문구 속에 성별 고정관념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생활 속 콘텐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정 성별을 제한된 역할로만 표현하거나, 성별에 따라 능력과 행동을 단정하는 장면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됐다.
홍보물과 방송 콘텐츠, 광고, 공공기관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성평등의 기준을 적용하면 무심코 반복되던 고정관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취지다. 참석자들은 익숙한 사례를 통해 성인지 감수성이 생활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언어에서 시작하는 작은 변화
마지막 순서에서는 일상적인 언어생활 속 성차별 표현을 개선하는 방법이 다뤄졌다. ‘유모차’를 ‘유아차’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미혼’을 ‘비혼’으로 바꾸어 부르는 사례가 소개됐다.
‘유아차’는 돌봄의 책임을 어머니에게만 연결하지 않고 아이가 이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 표현이다. ‘저출생’은 출산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인상을 줄이고 출생 현상 자체를 나타내는 말로 제시됐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부족하거나 미완성으로 바라보지 않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표현으로 소개됐다.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말 한마디를 돌아보고 더 평등한 표현을 선택하는 작은 실천이 모이면 사회의 인식도 한 단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강연의 핵심 메시지였다.
일상으로 이어지는 성평등
이번 강연은 여권통문에서 시작된 여성 권리의 역사부터 가족 내 역할 변화, 경제적 참여와 의사결정, 지역 안전, 대중 콘텐츠와 언어생활까지 폭넓게 연결했다. 성평등이 특정한 사람이나 기관만의 과제가 아니라 가정과 일터, 지역사회에서 함께 실천해야 할 생활의 기준이라는 점을 알기 쉽게 전달했다.
현장에서는 통계와 영상, 사례 사진을 활용한 설명이 차분하게 이어졌다. 유쾌한 진행이 더해지면서 참석자들이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부담 없이 이해하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는 모습도 나타났다.
부평구의 여성친화도시 정책과 이번 양성평등주간 기념 강연은 제도적 노력과 시민의 일상적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방향을 보여줬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알아차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익숙한 표현과 이미지를 다시 살피는 행동이 평등한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로 제시됐다.
성인지 감수성은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역할과 표현을 한 번 더 살피는 일이 성평등한 사회를 향한 구체적인 한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