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부평 산곡동 영단주택의 80년 역사

부평 산곡동 영단주택 마을의 역사와 현재
인천 부평구 산곡동 87번지 일대에는 한때 영단주택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똑같이 생긴 집들이 촘촘히 붙어 있던 이곳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주택가였습니다. 산곡동은 본래 부평도호부청사 마장면 산곡리 지역으로, 산이 곶으로 변한 지형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기르던 지역으로 마장 또는 백마장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산곡초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재개발로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높은 펜스와 크레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의 영단주택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이 인천 부평에 건립한 노동자용 서민 주택단지입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경인기업주식회사가 한옥 형식의 임대 주택과 합숙소를 건설해 운영했으며, 이후 조선주택영단이 인수해 1944년 일본식 임대 주택을 추가로 건설해 통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한옥식 구사택과 일본식 신사택이 혼재한 독특한 주거 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1945년부터 1973년까지 미군 주둔과 애스컴 해체 시기까지 이곳에 근무하는 한국인 종업원들의 임대 주택으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도 서민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2023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과거의 활기와 현재의 변화
과거 산곡동 영단주택 주변에는 백마시장, 백마극장, 덕화원, 정아식당, 봉다방, 경충철물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노포들이 있었습니다. 백마시장에서 장을 보고, 백마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덕화원에서 짜장면을 먹고, 봉다방에서 냉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주민들의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특히 봉다방은 부평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인천 다방문화의 산 역사로 평가받았습니다.
이곳은 미로 같은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이자, 주민들이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골목과 가게들은 점차 쇠퇴했고,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추억 속에 남은 산곡동 영단주택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담아온 산곡동 영단주택 마을은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과거의 모습은 박물관이나 사진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